복음은 끈질긴 죄책감이 찾아올 때 충분히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죄책감으로 시달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복음의 능력을 붙잡아야 합니다. 일생동안 끈질긴 죄책감도 사실이지만, 변함이 없는 복음의 능력이 사실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7세기 청교도 작가 토머스 윌콕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이 글을 이곳에 옮겨 봅니다.
1. 자기 죄만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께로 초점을 옮기라.
고집스럽게 죄만 쳐다보지 말고 그 죄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잠시도 그분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 자기 죄를 보면서 그 현장에 계셨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면, 그만 집어 치우라! 양심의 그 모든 격동 속에서 우리는 오로지, 그리고 계속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한다.
2. 우리의 중보자 그리스도께로 초점을 옮기라.
기도할 수 없어 낙심 될 때는, 우리를 위해 성부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롬8:34)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과 함께 우주를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아버지께 우리의 형편을 아뢰어 주신다는 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3. 십자가에서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 초점을 두라.
죄책감이 끈질기게 따라 붙거든, 예수님이 지금 어디 계시며 지금까지 어디 계셨는지를 기억하라. 그 분은 십자가 위에 계셨고, 거기서 우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죽음의 공격을 모두 꺾으셨다. 지금 그 분은 우리의 대언자요 중보자로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렇게 영광중에 계신다고 해서 죄인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으신다. 그 분의 마음은 천국에 계신 지금이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나 똑같다.
4.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초점을 옮기라.
죄책감이 여전히 끈질기게 따라붙거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죄를 사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라(사43:25, 겔36:22, 요일2:12) 주님은 우리를 값주고 사심으로써 우리를 당신의 영광스러운 기념물로 삼으셨다. 주님께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이 당신의 행복이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가장 절망적인 죄인일지라도 그 양심이 안심하고 안식할 수 있다.
5. 자기를 정죄하는 상태에서 누가 최종 심판자인지 기억하라.
양심이 끊임없이 공격하고 들어와 자신을 정죄 할 때는, 주님만이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스도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관이시기에(벧전4:5) 오직 그 분만이 최후 판결을 내리실 수 있다. 그리스도가 재판관이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양심이 재판관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소망과 은혜와 용서를 선언하시는데 내가 회복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은 주님을 밀치고 내가 감히 재판관 노릇을 하는 것이다. 죄가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 된다해도 그리스도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신다.
6. 자기 자신을 멸시하는 태도에서 초점을 옮기라.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자기를 멸시하는 태도는 자기중심적 태도가 교묘하게 변형된 것이다. 이런 태도가 그리스도의 의와 그분의 십자가를 더 많이 바라보게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할 뿐이다. 죄 때문에 가슴 아파할 수는 있지만 복음 안에 있는 소망까지 끊어지게 만들지는 말라.
끈질긴 죄책감에 시달리십니까? 우리 가족이나 이웃들이 죄책감에 끌려다니며, 기쁨없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갑니까? 1번과 6번까지의 글을 읽고 묵상하기를 권합니다. 이것은 정신통일이 아니고, 마인드 콘트롤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자신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롬8:1)고 외치는 그리스도인이길 원합니다.
출처: 제리브리지스의 견고함 p83-86 인용